默軒公 (諱 萬運, 字 希元)은 1736年 校理公의 玄孫으로 出生하셨다.
李退溪, 鄭寒岡, 李石潭으로 이어지는 學脈과 李退溪, 金鶴峯, 張敬堂, 李葛庵, 金齎山(외조부)로 이어지는 學脈의 兩脈을 두루 兼한 正統性理學의 面貌를 갖춘 學者이며, 한편 天文, 曆法, 敎學등의 當時 雜學을 穿鑿(천착)한 朝鮮後期의 科學發展에 寄與한 嶺南士林의 泰山北斗 같은 存在였다.
公은 41歲 늦은 나이에 科擧에 應試하여 生員이 되고 이어 大科에 及第하였다.
그러나 時節에 막혀서 십여년을 집에 계셨는데 1790年에 司饔院主簿, 咸鏡道都事, 禮曹佐郞등의 官職을 연이어 除授 받았으나 모두 謝絶한 후 學問에만 專念하셨다.
正祖는 特旨로 公을 司憲府持平의 官職을 내리니 이때 公의 나이는 61歲였다. 九旬老父의 奉養을 理由로 中央 官署의 벼슬을 사양하시니 正祖는 마지못해 許諾하면서 鄕里에 가까운 安義縣監을 除授 하셨다.
公은 安義縣監으로 善政을 베풀었으며, 65歲에 司諫院正言을 除授 받았으나, 때마침 正祖께서 逝去하시니 上京하여 哭하고는 故鄕으로 돌아와 다시는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다,
公의 論文에는 皇極經文釋義(황극경문석의), 朞三百註解(기삼백주해), 月行會日圖(월행회일도), 則河圖劃卦設(즉하도획괘설), 元會運世數解(원회운세수해), 體數用數 六氣圖(체수용수 육기도), 納音圖(납음도), 經世四象體用之數圖(경세사상체용지수도 ) 등 數 篇이 있다.
이것은 正統性理學에 관한 公의 論文인 心經發揮記疑(심경발휘기의), 啓蒙攷疑(계몽고의 )등에 못지 않은 比重을 가진 것으로서 아직 제대로 內容糾明이 되지는 않았으나, 朝鮮後記 科學史硏究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公께서 純祖 20년에 逝去하시니 享年 85歲이셨다.
文集은 默軒文集 8卷이 있다.
墓所는 漆谷郡 倭館邑 石田里 錧基 默軒宗宅 앞 艮坐 合窆
작성자[홈:귀암]_광호 1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