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하(李지遐)
페이지 정보
작성자 [홈:귀암]_광호 작성일 07-12-06 07:36 조회 1,378회 댓글 0건본문
생몰년 미상.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자수(字綏). 부사 효훈(孝訓)의 아들로, 임숙영(任叔英)의 문인이다.
15세 때 향시에 1등으로 합격하였으나, 이이첨(李爾瞻)이 심복을 시켜 자기를 거짓으로 논척하도록 꾸미고 사학(四學)의 유생들에게 그들의 논척이 부당하다는 소를 올리게 하여 자기의 지위를 굳히려 하는 일이 있자, 이를 알고 당시 남학장의(南學掌議)로서 이이첨의 간사한 꾀를 폭로하였다.
이 사건으로 이이첨에 의하여 중형을 받고 고향으로 쫓겨났다.
그뒤 1633년(인조 11)사마시에 합격하고, 대신들에 의하여 지난날의 지조가 인정되어 왕에게 알려지게 되자 사옹원봉사에 특별히 임용되었다. 벼슬은 군수에 이르렀다.
[참고문헌]
仁祖實錄, 燃藜室記述, 大東野乘. 〈車勇杰〉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자수(字綏). 부사 효훈(孝訓)의 아들로, 임숙영(任叔英)의 문인이다.
15세 때 향시에 1등으로 합격하였으나, 이이첨(李爾瞻)이 심복을 시켜 자기를 거짓으로 논척하도록 꾸미고 사학(四學)의 유생들에게 그들의 논척이 부당하다는 소를 올리게 하여 자기의 지위를 굳히려 하는 일이 있자, 이를 알고 당시 남학장의(南學掌議)로서 이이첨의 간사한 꾀를 폭로하였다.
이 사건으로 이이첨에 의하여 중형을 받고 고향으로 쫓겨났다.
그뒤 1633년(인조 11)사마시에 합격하고, 대신들에 의하여 지난날의 지조가 인정되어 왕에게 알려지게 되자 사옹원봉사에 특별히 임용되었다. 벼슬은 군수에 이르렀다.
[참고문헌]
仁祖實錄, 燃藜室記述, 大東野乘. 〈車勇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