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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이씨 - 역사적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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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극규(李克圭)

페이지 정보

작성자 [홈:귀암]_광호 작성일 07-12-06 06:30 조회 2,068회 댓글 0건

본문

[정의]
생몰년 미상. 조선 중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공서(公瑞). 이집(李集)의 증손이며, 이지직(李之直)의 손자이다. 우의정 이인손(李仁孫)의 조카이며, 의정부사인 이장손(李長孫)의 아들이다. 훈구파의 거두 이극돈의 사촌이다.

[활동사항]
1472년(성종 3) 춘장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485년(성종 16) 지평으로 있으면서 4품 이상의 당하관에게 역마(驛馬)를 이용하게 하는 것은 역로의 조폐(凋弊)를 가져오므로 불가함을 주장하였고, 그의 사촌인 이극균이 병조판서가 되자 혐의에서 벗어나기도 하였다. 일찍이 전라도, 황해도의 도사를 역임하였고, 다시 영안도도사에 제수되자 이를 회피하고, 1491년 보덕이 되었다. 연산군 재위 때에는 장례원판결사, 호조참의, 병조참의를 거쳐 1496년에 대사간을 역임하였다. 1497년에는 군액과 번상의 폐단, 재가녀 소생의 허통 등을 주장하였다. 1498년에 무오사화가 발생하자 김종직의 조의제문 사건은 법률에 따라 논단해서 신하로서 두 마음을 가지지 않도록 경계하여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연산군의 난정에 관직을 사퇴하고 해주의 수양산 아래에 은거하다 그곳에서 죽었다.

[기타]
창녕의 운곡서원에 제향(祭享)되어 있다. 묘소는 성남시 중원구 하대원동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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