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창(李道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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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홈:귀암]_광호 작성일 08-04-18 15:32 조회 2,507회 댓글 0건본문
1595년 (선조 28) ~ 1659 (현종즉위).
자는 태유(泰有), 호는 한죽정(寒竹亭)이다.
정구(鄭逑)와 장현광(張顯光)에게 나아가 배웠다. 관직은 처음에 의금부도사(義禁莩事)를 역임하였고, 병자호란때에는 국왕이 남한산성에 피신하시자 의병을 일으켜서 김식(金湜)등과 함께 조령(鳥嶺)을 방어하였다고 한다.
이후 관직에 제수되었으나 사양하고는 고향에 머물렀다고 한다.
■ 한죽정일기(寒竹亭日記) ■
이윤우의 아들인 이도창이 남긴 일기로 매년 한 책씩 써 나갔는데, 현재 9책이 남아있다. 작성시기는 1639년부터 1659년까지인데, 중간에 유실된 부분이 있으며, 현재는 9년분이 남아있다.
현전하는것은 1639년, 1642년, 1643년, 1645년, 1650년, 1653년, 1655년, 1656년, 1659년때의 것이다.
이 일기는 표지에 '임오일과(壬午日課)', '계사일과(癸巳日課)' 처럼 쓴 시기만 기록하고 있다. 본문 내용은 통상적인 양반가의 전형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는데. 특징적인 사항은 간혹 도서의 겉 장 안쪽에 '기신(忌辰)' 이라고 하여 이 집안의 제사 지내는 규정을 기록하여 두기도 하였다는 점이다.
자는 태유(泰有), 호는 한죽정(寒竹亭)이다.
정구(鄭逑)와 장현광(張顯光)에게 나아가 배웠다. 관직은 처음에 의금부도사(義禁莩事)를 역임하였고, 병자호란때에는 국왕이 남한산성에 피신하시자 의병을 일으켜서 김식(金湜)등과 함께 조령(鳥嶺)을 방어하였다고 한다.
이후 관직에 제수되었으나 사양하고는 고향에 머물렀다고 한다.
■ 한죽정일기(寒竹亭日記) ■
이윤우의 아들인 이도창이 남긴 일기로 매년 한 책씩 써 나갔는데, 현재 9책이 남아있다. 작성시기는 1639년부터 1659년까지인데, 중간에 유실된 부분이 있으며, 현재는 9년분이 남아있다.
현전하는것은 1639년, 1642년, 1643년, 1645년, 1650년, 1653년, 1655년, 1656년, 1659년때의 것이다.
이 일기는 표지에 '임오일과(壬午日課)', '계사일과(癸巳日課)' 처럼 쓴 시기만 기록하고 있다. 본문 내용은 통상적인 양반가의 전형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는데. 특징적인 사항은 간혹 도서의 겉 장 안쪽에 '기신(忌辰)' 이라고 하여 이 집안의 제사 지내는 규정을 기록하여 두기도 하였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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