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례(婚禮)의 의의(意義)
페이지 정보
작성자 [홈:귀암]_광호 작성일 08-06-05 12:30 조회 6,191회 댓글 0건본문
■ 혼례(婚禮)의 의의(意義) ■
혼례(婚禮)란 남녀가 예를 갖춘 가운데 부부(夫婦)가 되는 하나의 제도이다.
오늘날의 혼례는 과거의 전통혼례처럼 신부집의 초례청(醮禮廳)에서 하객(賀客)이 축하하는 가운데 행하든 전통혼례식은 사라지고 상업화한 예식장에서 거행함에 존엄한 의식의 정신이 사라진지 오래다.
행례절차(行禮節次)중에는 옛날 전통혼례 의식의 일부 절차가 가미되어 행례하고 있는 실정이다.
전통혼례의 절차는 古來(고래)의 六禮(육례)와 조선후기의 혼례절차와는 조금 다른다.
古來(고래)의 육례(六禮)는 납채(納采), 문명(問名), 납길(納吉), 청기(請期), 납징(納徵), 친영(親迎)의 여섯 가지였으나. 이것이 너무 번거러워서 중간에(조선중기) 의혼(議婚), 납채(納采), 납폐(納幣), 친영(親迎)의 사례(四禮)로 줄였다.
⊙ 그래서 전통혼례의 절차를 육례의 순서대로 서명하지 않고 간략하게 요약하여 몇 가지만 설명하기로 한다. ⊙
① 의혼(議婚) - 의혼절차가 지금은 행하고 잊지 않은 경우가 많으며 생략하여도 무방하다.
집안의 자녀가 장성하여 혼기에 접어들면 부모는 혼인을 서두르게 된다.
그리하여 적당한 규수(閨秀 : 신부)나 낭자(郎子 : 신랑)를 고르게 되는데, 대개 매파(媒婆 : 중매자)로 하여금 규수댁으로 가게해서 그 규수의 성품과 행실 그리고 그 집안의 내력을 소상히 살피고 마땅하다고 여기면 청혼(請婚)을 한다. 그러면 청혼을 받은 규수 댁에서도 매파로 하여금 낭자의 인품과 학식과 그 집안의 가통(家統)등을 살피게 하여 마땅하다고 여기면 허혼(許婚)을 하게된다.
이와 같이 허혼이 내락(內諾)되면 그 때에야 비로소 정식으로 신랑쪽에서 청혼서(請婚書)를 보내게 되고 이에 대한 답장으로서 허혼서가 보내진다.
이것을 의혼(議婚)이라 한다. 단지 혼주가 기년복(朞年服 : 일년의 상중) 이상의 喪中(상중)이 아니어야 한다.
◑ 청혼서식(請婚書式)
☞ 참고 : ○○에 들어가는 것은 각기 해당하는 사람의 이름이나 동, 해당하는 날짜등을 맞게 기입하면 된다.
※ 해설 :
엎드려 생각하건대 일하(日下)에 존체후가 시절따라 만중하시기를 늘 구구하게 지극한 마음으로 우러르고 있습니다.
저의 미거한 자식이 혼인 할 나이가 되었으니 아직 적합한 곳이 없어 혼인시키지 못하였더니 근자에 듣자오니 ○동(아무동) ○○(아무개) 집의 규수가 현숙하고 이품이 훌륭하다 하오니 권유해서 제 자식을 베필로 맺어 주심이 어떠하올른지요?
예를 다 갖추지 못하여 삼가 절하며 글월을 올리나이다.
○ 년 ○ 월 ○ 일
제 ○○○(성명) 배상
◑ 허혼서식(許婚書式)
☞ 윗글의 弟(제)자는 양가가 혼인을 맺으면 형제의 世誼(세의)를 맺게되니, 즉 사돈간이 됨이니 겸칭으로 자기를 弟(제)라 낮추어 표기한다.
※ 해설 :
때는 이른 봄이온데 존체후 항시 대안(大安)하시온지, 평소부터 구구함이(자기의 변변치 못한 생각) 지극한 마음으로 우르러 보고 있습니다. 저의 딸 자식의 혼사는 한미(寒微) : 가난함)하고 비루(卑陋 : 낮은 신분)한 것을 개의치 않으시고 이처럼 힘써 권하시니 감히 듣고 쫓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글월로 인사를 다 갖추지 못함을 남긴 채 엎드려 높은 비치심 있기를 헤아리며 삼가 절하며 글월을 올립니다.
▤ 婚書紙(혼서지)는 가로 72㎝, 세로 32㎝정도의 대간지(大簡紙)를 세로 9칸으로 접어 양쪽 한칸씩을 여백(餘白 : 빈칸으로 남김)으로 남기고 가운데 일곱칸에 배열해서 쓴다. ▤
② 납채(納采) - 지금도 아래 행사는 시행되고 있다.
※ 납채란? 사성(四星 : 四柱_사주라고도 하며 신랑에 生年月日時_생년월일시를 적은것)
⊙ 납채서(納采書 : 사성을 보낼 때 함께 보내는 편지)와 함께 신부집으로 보내는 것을 말한다. 규수댁에서 허혼서가 도래하면 신랑댁에서 사자(使者 : 심부름 군)로 하여금 규수댁으로 납채를 보내는 것이 그 다음의 순서이나 납채를 보내기에 앞서 허혼서를 받들고 사당고유를 먼저한다.(다만 사당이 없을 시 사당고유 절차가 없게 된다.)
◑ 사당고유문(祠堂告由文)
維歲次干支○月干支朔○日干支 孝 玄孫 ○○
敢昭告于
顯高祖考學生府君(벼슬이 있을시는 관직명을 기입한다)
顯高祖妣孺人○貫○氏 ○之子 年旣長成 未有伉儷 已議娶 ○洞○氏之女
今日納采 不勝感慕 謹以 淸酌脯醯 虔告謹告
→ 번역문
유세차간지○월간지삭○일간지 효 현손 ○○
감소고우
현고조고학생부군
현고조비유인○관○씨 ○지자 년기장성 미유항려 이의취 ○동○씨지녀
금일납채 불승감모 근이 청작포혜 건고근고
※ 해설 : 간지와 ○는 해당하는 날짜, 동, 성씨, 이름등을 알맞게 기입한다.
○년○월○일 효 현손 ○○는 감히 드러나신 고조고학생부군과 고조비유인 ○씨에게 고하나이다. ○○의 아들 ○○는 나이 벌써 장성하였사오나 아직 베필이 없었아온데 ○洞 ○○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기로 이미 의논이 되어 오늘 납채를 하게됨에 사모하는 감회를 이기지 못하와 삼가 맑은 술과 포혜로써 경건하고도 공손히 펼쳐 아뢰옵나이다.
◑ 납채서식(納采書式)
※ 해설 :
이른 여름철에 공손히 엎드려 생각하온데 존체만중 하업시기를 늘 지극히 구구한 마름으로 우르러며 말씀드립니다. 저의 자식 혼사는 이미 허락하심을 받았사옴에 비천한 가문의 경사이며 다행한 일이 옵니다. 사주를 기록하여 보내드리오니 혼인 날짜를 회신하여 주심이 어떠하겠습니까? 예를 다 갖추지 못함에 엎드려 높은 비추심을 헤아리며 삼가 글월을 올리나이다.
☞ 조부가 주혼이면 孫兒(손아), 백숙부가 주혼이면 姪兒(질아), 형이 주혼이면 弟(제)라고 家兒(가아) 대신에 써 넣는다.
◑ 사성서식(四星書式)
㈂ 사주(四柱 : 四星_사성이라고도 함)와 봉투쓰는 일정한 서식(書式)
→ 가로 65㎝, 세로 36㎝의 대간지를 다섯 칸으로 접는다.
→ 廣州 後人 姓名(광주 후인 성명) 手決(수결 : 서명이나 날인도 무방함)
→ 가운데 칸 하나에 한 줄로 ○年 ○月 ○日 ○時生(○년 ○월 ○일 ○시생)이라고 한 줄로만 쓴다.
→ 봉투는 대간지로 가로 18㎝, 세로 40㎝되게 만들며 앞면에는 ○ 生員宅 下執事 入納(○ 생원댁 하집사 입납)이라 쓴다. 봉투 위에는 풀칠은 아니하고 그냥 앞면으로 접어두며 뒷면은 謹封(근봉)이라 쓰고 도면과 같이 쓴다.
㈃ 사주단자(四柱單子) 보내는 절차
→ 싸리나무 가지를 봉투 길이로 잘라서 위를 조금 남기고 둘로 쪼개 그 사이에 봉투를 끼워 넣는다. 그리고 청실 홍실을 꽂아 싸리나무가지에 걸어 매듭없이 묶은 다음 봉투의 가운데 부분을 감으나 매듭은 짓지 않는다. 이것을 겹 비단 보자기(겉은 다홍색 안은 남색)에 싸서 다시 謹封(근봉)이란 띠를 두른다. 이것을 사람을 시켜 규수댁으로 보낸다. 납채를 받은 규수댁에서는 사당으로 가서 酒果(주과)를 진설하고 고유한다. 이때의 고유문은 다음과 같다.(사당이 없는 집에서는 고유하지 않는다) 또 납채를 받은데 대한 답서를 보낸다.
☞ 참고 : 사주단자를 보내는 절차는 지금은 위와 같이 아니하고 있다.
¶. 고유문
維歲次干支○月干支朔○日干支 孝 玄孫 ○○
敢昭告于
顯高祖考學生府君
顯高祖妣孺人○○○氏○之 幾女 年漸長成 已許嫁○○洞 ○○之○○○
今日納采 不勝感愴 謹以 酒果用伸 虔告謹告
→ 번역문
유세차 간지○월간지삭○일간지 효 현손 ○○
감소고우
현고조고학생부군
현고조비유인○○○씸○지 기녀 년점장성 이허가○○동 ○○지○○○(성명)
금일납채 불승감창 근이 주과용신 건고근고
※ 해설 : 간지와 ○ 는 해당하는 날찌와 이름, 동등을 일맞게 기입한다.
○년○월삭○일 효 현손 ○○는 삼가 드러나신 고조부모님께 고하나이다. ○○의 몇 女 나이가 점점 장성해 가고 있어 이미 ○○의 아들에게 허혼을 하였사온데 오늘 납폐가 당도하게됨에 사모하는 감회를 이길 수 없어 삼가 술과 과일로써 경건히 펼치고 공손히 아뢰옵니다.
¶. 납채답서(納采答書)
廣州 後人 李○○
(波平尹)生員宅執事 伏承
尊慈 不棄寒陋 過聽媒氏之言 擇僕之畿女 作配貴令允 弱息蠢愚 又不能敎
旣辱采擇 敢不拜從 伏維
尊慈特賜
鑑念不宣
年 月 日
廣州 李 ○○ 拜
→ 번역문
광주 후인 이○○
(파평윤)생원택집사 복승
존자 불기한누 과청매시지언 택복지기녀 작배귀영윤 약식준우 우불능교
기욕채택 감불배종 복유
존자특사
감념불선
년 월 일
광주 이○○ 배
※ 해설 : ○는 해당 이름과 해당 문중, 날짜등을 알맞게 기입한다.
광주 이 후인 ○○는 파평 후인 (○○관 후인)윤생원(○생원)의 집사님께 답서를 올립니다. 귀하께서는 저의 집이 한미 한 것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중매인의 말을 받아들이어서 저의 몇 女로 귀하의 아드님과 짝을 정하여 주심에 사실은 제 딸자식은 어리고 어리석은데다가 교육도 제대로 못 시켰사오나 이미 귀하의 채택하신바 되었음에 감히 절하고 쫓지 않을 수 없습니다.
베풀어주신 높은 은혜를 엎드려 생각하며 그 은혜에 대한 예를 다 갖추지 못 하옵나이다.
③ 연길(涓吉)
연길이란 吉日을
혼례(婚禮)란 남녀가 예를 갖춘 가운데 부부(夫婦)가 되는 하나의 제도이다.
오늘날의 혼례는 과거의 전통혼례처럼 신부집의 초례청(醮禮廳)에서 하객(賀客)이 축하하는 가운데 행하든 전통혼례식은 사라지고 상업화한 예식장에서 거행함에 존엄한 의식의 정신이 사라진지 오래다.
행례절차(行禮節次)중에는 옛날 전통혼례 의식의 일부 절차가 가미되어 행례하고 있는 실정이다.
전통혼례의 절차는 古來(고래)의 六禮(육례)와 조선후기의 혼례절차와는 조금 다른다.
古來(고래)의 육례(六禮)는 납채(納采), 문명(問名), 납길(納吉), 청기(請期), 납징(納徵), 친영(親迎)의 여섯 가지였으나. 이것이 너무 번거러워서 중간에(조선중기) 의혼(議婚), 납채(納采), 납폐(納幣), 친영(親迎)의 사례(四禮)로 줄였다.
⊙ 그래서 전통혼례의 절차를 육례의 순서대로 서명하지 않고 간략하게 요약하여 몇 가지만 설명하기로 한다. ⊙
① 의혼(議婚) - 의혼절차가 지금은 행하고 잊지 않은 경우가 많으며 생략하여도 무방하다.
집안의 자녀가 장성하여 혼기에 접어들면 부모는 혼인을 서두르게 된다.
그리하여 적당한 규수(閨秀 : 신부)나 낭자(郎子 : 신랑)를 고르게 되는데, 대개 매파(媒婆 : 중매자)로 하여금 규수댁으로 가게해서 그 규수의 성품과 행실 그리고 그 집안의 내력을 소상히 살피고 마땅하다고 여기면 청혼(請婚)을 한다. 그러면 청혼을 받은 규수 댁에서도 매파로 하여금 낭자의 인품과 학식과 그 집안의 가통(家統)등을 살피게 하여 마땅하다고 여기면 허혼(許婚)을 하게된다.
이와 같이 허혼이 내락(內諾)되면 그 때에야 비로소 정식으로 신랑쪽에서 청혼서(請婚書)를 보내게 되고 이에 대한 답장으로서 허혼서가 보내진다.
이것을 의혼(議婚)이라 한다. 단지 혼주가 기년복(朞年服 : 일년의 상중) 이상의 喪中(상중)이 아니어야 한다.
◑ 청혼서식(請婚書式)
☞ 참고 : ○○에 들어가는 것은 각기 해당하는 사람의 이름이나 동, 해당하는 날짜등을 맞게 기입하면 된다.
※ 해설 :
엎드려 생각하건대 일하(日下)에 존체후가 시절따라 만중하시기를 늘 구구하게 지극한 마음으로 우러르고 있습니다.
저의 미거한 자식이 혼인 할 나이가 되었으니 아직 적합한 곳이 없어 혼인시키지 못하였더니 근자에 듣자오니 ○동(아무동) ○○(아무개) 집의 규수가 현숙하고 이품이 훌륭하다 하오니 권유해서 제 자식을 베필로 맺어 주심이 어떠하올른지요?
예를 다 갖추지 못하여 삼가 절하며 글월을 올리나이다.
○ 년 ○ 월 ○ 일
제 ○○○(성명) 배상
◑ 허혼서식(許婚書式)
☞ 윗글의 弟(제)자는 양가가 혼인을 맺으면 형제의 世誼(세의)를 맺게되니, 즉 사돈간이 됨이니 겸칭으로 자기를 弟(제)라 낮추어 표기한다.
※ 해설 :
때는 이른 봄이온데 존체후 항시 대안(大安)하시온지, 평소부터 구구함이(자기의 변변치 못한 생각) 지극한 마음으로 우르러 보고 있습니다. 저의 딸 자식의 혼사는 한미(寒微) : 가난함)하고 비루(卑陋 : 낮은 신분)한 것을 개의치 않으시고 이처럼 힘써 권하시니 감히 듣고 쫓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글월로 인사를 다 갖추지 못함을 남긴 채 엎드려 높은 비치심 있기를 헤아리며 삼가 절하며 글월을 올립니다.
▤ 婚書紙(혼서지)는 가로 72㎝, 세로 32㎝정도의 대간지(大簡紙)를 세로 9칸으로 접어 양쪽 한칸씩을 여백(餘白 : 빈칸으로 남김)으로 남기고 가운데 일곱칸에 배열해서 쓴다. ▤
② 납채(納采) - 지금도 아래 행사는 시행되고 있다.
※ 납채란? 사성(四星 : 四柱_사주라고도 하며 신랑에 生年月日時_생년월일시를 적은것)
⊙ 납채서(納采書 : 사성을 보낼 때 함께 보내는 편지)와 함께 신부집으로 보내는 것을 말한다. 규수댁에서 허혼서가 도래하면 신랑댁에서 사자(使者 : 심부름 군)로 하여금 규수댁으로 납채를 보내는 것이 그 다음의 순서이나 납채를 보내기에 앞서 허혼서를 받들고 사당고유를 먼저한다.(다만 사당이 없을 시 사당고유 절차가 없게 된다.)
◑ 사당고유문(祠堂告由文)
維歲次干支○月干支朔○日干支 孝 玄孫 ○○
敢昭告于
顯高祖考學生府君(벼슬이 있을시는 관직명을 기입한다)
顯高祖妣孺人○貫○氏 ○之子 年旣長成 未有伉儷 已議娶 ○洞○氏之女
今日納采 不勝感慕 謹以 淸酌脯醯 虔告謹告
→ 번역문
유세차간지○월간지삭○일간지 효 현손 ○○
감소고우
현고조고학생부군
현고조비유인○관○씨 ○지자 년기장성 미유항려 이의취 ○동○씨지녀
금일납채 불승감모 근이 청작포혜 건고근고
※ 해설 : 간지와 ○는 해당하는 날짜, 동, 성씨, 이름등을 알맞게 기입한다.
○년○월○일 효 현손 ○○는 감히 드러나신 고조고학생부군과 고조비유인 ○씨에게 고하나이다. ○○의 아들 ○○는 나이 벌써 장성하였사오나 아직 베필이 없었아온데 ○洞 ○○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기로 이미 의논이 되어 오늘 납채를 하게됨에 사모하는 감회를 이기지 못하와 삼가 맑은 술과 포혜로써 경건하고도 공손히 펼쳐 아뢰옵나이다.
◑ 납채서식(納采書式)
※ 해설 :
이른 여름철에 공손히 엎드려 생각하온데 존체만중 하업시기를 늘 지극히 구구한 마름으로 우르러며 말씀드립니다. 저의 자식 혼사는 이미 허락하심을 받았사옴에 비천한 가문의 경사이며 다행한 일이 옵니다. 사주를 기록하여 보내드리오니 혼인 날짜를 회신하여 주심이 어떠하겠습니까? 예를 다 갖추지 못함에 엎드려 높은 비추심을 헤아리며 삼가 글월을 올리나이다.
☞ 조부가 주혼이면 孫兒(손아), 백숙부가 주혼이면 姪兒(질아), 형이 주혼이면 弟(제)라고 家兒(가아) 대신에 써 넣는다.
◑ 사성서식(四星書式)
㈂ 사주(四柱 : 四星_사성이라고도 함)와 봉투쓰는 일정한 서식(書式)
→ 가로 65㎝, 세로 36㎝의 대간지를 다섯 칸으로 접는다.
→ 廣州 後人 姓名(광주 후인 성명) 手決(수결 : 서명이나 날인도 무방함)
→ 가운데 칸 하나에 한 줄로 ○年 ○月 ○日 ○時生(○년 ○월 ○일 ○시생)이라고 한 줄로만 쓴다.
→ 봉투는 대간지로 가로 18㎝, 세로 40㎝되게 만들며 앞면에는 ○ 生員宅 下執事 入納(○ 생원댁 하집사 입납)이라 쓴다. 봉투 위에는 풀칠은 아니하고 그냥 앞면으로 접어두며 뒷면은 謹封(근봉)이라 쓰고 도면과 같이 쓴다.
㈃ 사주단자(四柱單子) 보내는 절차
→ 싸리나무 가지를 봉투 길이로 잘라서 위를 조금 남기고 둘로 쪼개 그 사이에 봉투를 끼워 넣는다. 그리고 청실 홍실을 꽂아 싸리나무가지에 걸어 매듭없이 묶은 다음 봉투의 가운데 부분을 감으나 매듭은 짓지 않는다. 이것을 겹 비단 보자기(겉은 다홍색 안은 남색)에 싸서 다시 謹封(근봉)이란 띠를 두른다. 이것을 사람을 시켜 규수댁으로 보낸다. 납채를 받은 규수댁에서는 사당으로 가서 酒果(주과)를 진설하고 고유한다. 이때의 고유문은 다음과 같다.(사당이 없는 집에서는 고유하지 않는다) 또 납채를 받은데 대한 답서를 보낸다.
☞ 참고 : 사주단자를 보내는 절차는 지금은 위와 같이 아니하고 있다.
¶. 고유문
維歲次干支○月干支朔○日干支 孝 玄孫 ○○
敢昭告于
顯高祖考學生府君
顯高祖妣孺人○○○氏○之 幾女 年漸長成 已許嫁○○洞 ○○之○○○
今日納采 不勝感愴 謹以 酒果用伸 虔告謹告
→ 번역문
유세차 간지○월간지삭○일간지 효 현손 ○○
감소고우
현고조고학생부군
현고조비유인○○○씸○지 기녀 년점장성 이허가○○동 ○○지○○○(성명)
금일납채 불승감창 근이 주과용신 건고근고
※ 해설 : 간지와 ○ 는 해당하는 날찌와 이름, 동등을 일맞게 기입한다.
○년○월삭○일 효 현손 ○○는 삼가 드러나신 고조부모님께 고하나이다. ○○의 몇 女 나이가 점점 장성해 가고 있어 이미 ○○의 아들에게 허혼을 하였사온데 오늘 납폐가 당도하게됨에 사모하는 감회를 이길 수 없어 삼가 술과 과일로써 경건히 펼치고 공손히 아뢰옵니다.
¶. 납채답서(納采答書)
廣州 後人 李○○
(波平尹)生員宅執事 伏承
尊慈 不棄寒陋 過聽媒氏之言 擇僕之畿女 作配貴令允 弱息蠢愚 又不能敎
旣辱采擇 敢不拜從 伏維
尊慈特賜
鑑念不宣
年 月 日
廣州 李 ○○ 拜
→ 번역문
광주 후인 이○○
(파평윤)생원택집사 복승
존자 불기한누 과청매시지언 택복지기녀 작배귀영윤 약식준우 우불능교
기욕채택 감불배종 복유
존자특사
감념불선
년 월 일
광주 이○○ 배
※ 해설 : ○는 해당 이름과 해당 문중, 날짜등을 알맞게 기입한다.
광주 이 후인 ○○는 파평 후인 (○○관 후인)윤생원(○생원)의 집사님께 답서를 올립니다. 귀하께서는 저의 집이 한미 한 것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중매인의 말을 받아들이어서 저의 몇 女로 귀하의 아드님과 짝을 정하여 주심에 사실은 제 딸자식은 어리고 어리석은데다가 교육도 제대로 못 시켰사오나 이미 귀하의 채택하신바 되었음에 감히 절하고 쫓지 않을 수 없습니다.
베풀어주신 높은 은혜를 엎드려 생각하며 그 은혜에 대한 예를 다 갖추지 못 하옵나이다.
③ 연길(涓吉)
연길이란 吉日을
추천63 비추천 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