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례(祭禮)의 의의(意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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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홈:귀암]_광호 작성일 08-05-29 14:59 조회 2,131회 댓글 0건본문
■ 제례(祭禮)의 의의(意義) ■
제례는 자손들의 효심에 의해서 돌아가신 조상에 대하여 추원보본(追遠報本)하려는 숭조정신(崇祖精神)의 발로로서, 정성을 다하여 엄숙하게 거행해야 하는 의례입니다.
뿌리 없는 나무가 없는 것처럼 조상이 없는 자손이 어디 있겠습니까? 생각하면 조상의 은덕은 너무나도 큰 것이어서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겠습니까? 이 크나큰 은덕을 기리고 이 은덕에 보답하려는 마음은 잠시도 잊어서는 안될 일이겠지만은, 특히 돌아가신 기일(忌日)을 당하여, 또는 추석이나 설날같은 명절을 맞이해서, 또는 서리와 이슬이 내리는 소슬(蕭瑟)한 가을에 조상의 산소를 찾았을 때 우리는 조상을 추모하는 마음이 더욱 간절하여 제례를 올리는 것입니다.
추모의 정이 간절하면 정성 또한 지극해지는 것입니다. 제사는 정성에서 시작하여 정성으로 끝난다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예출어정(禮出於情)이란 말이 있습니다. 예는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 마음은 곧 추모의 정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제사를 앞두고 우리가 엄격한 재계(齋戒)를 통하여 마음과 행동에 근신을 다하는 것도 이 정성을 위하는 노력입니다.
옛사람들은 제사를 앞둔 열흘동안 앞의 7일간을 산제(散齊)라 하여 술을 마시지 않고, 고기를 먹지 않고, 음악을 듣지 않고, 여색(女色)을 가까이 하지 않으며, 타인의 길흉을 묻지 않는 등으로써 근신하는 동시에, 나머지 3일간을 치제(致齊)라하여 오로지 조상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일관하여 그 계시던 곳을 생각하고, 그 웃고 말씀하시던 것을 생각하고, 그 뜻하시던 것을 생각하고, 그 즐거워하시던 것을 생각하고, 그 즐기고 좋아하시던 것을 생각하는데 전념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마침내 제청(祭廳)에 섰을 때 조상의 모습이 애연한 가운데 나타나고, 숙연한 가운데 그 하시는 말씀이 들린다 했습니다. 이리하여 조상의 혼령과 나의 마음이 혼연히 교감하는 가운데 조상의 유훈과 유덕을 다시금 새롭게 감모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지성에 찬 우리의 마음은 자연 엄숙하고 경건한 태도로 나타나는 것이고, 이러한 태도는 자못 숭고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과공(過恭)은 비례(非禮)」라는 말이 있습니다. 마은은 없이 형식에만 치중하고 또 분수에 넘치게 제수(祭需)를 차리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못됩니다. 칭가유무(稱家有無)로 우리의 사정과 형편에 따라 정갈하고 조촐하게 제상을 차리되 정성을 다하여 예를 올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에는 반드시 질서가 따르는 것입니다.
질서가 있는 만큼 진설(陳設)이나 행사의 순서나 법식(法式)에 있어 우리가 따르고 지켜야 할 준례(準例)가 있는 것입니다. 조상 대대로 지켜온 이 준례 또한 대단히 중요한 것이어서 개인에 의해서 함부로 바꾸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만일 현실의 사정에 의해서 바꾸어야 할 점이 있다고 생각되면 문중에서 충분한 토의를 거쳐 종인들의 합의에 의해 고쳐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제례는 가가예(家家禮)에 따라 각 문중마다 다소의 차이가 있는 것으로서 우리 문중도 우리 문중 나름의 전통적인 제례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근자의 급속한 시대적 변천에 따라 많은 종인이 고향을 떠나 객지에서 핵가족중심의 생활을 하다보니 배운 바가 적어 자연 숭조정신이 해이해지고 전통제례도 또한 문란해진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복잡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생업에 바쁜 우리가 선조께서 지켜오신 전례를 그대로 다 따를 수는 없다 하더라도 가능한 한 정성과 격식을 갖추어 제사를 받들어야 되겠습니다. 개인의 주관에 따라 전통제례에 혹 비판의 소지가 있다 하더라도 자기 마음대로 함부로 제례를 변경할 것이 아니라 가급적 문중의 전통제례를 지키고 이를 통하여 우리 문중의 주체성과 동질성을 유지해 나가도록 힘써야 되겠습니다.
제례는 자손들의 효심에 의해서 돌아가신 조상에 대하여 추원보본(追遠報本)하려는 숭조정신(崇祖精神)의 발로로서, 정성을 다하여 엄숙하게 거행해야 하는 의례입니다.
뿌리 없는 나무가 없는 것처럼 조상이 없는 자손이 어디 있겠습니까? 생각하면 조상의 은덕은 너무나도 큰 것이어서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겠습니까? 이 크나큰 은덕을 기리고 이 은덕에 보답하려는 마음은 잠시도 잊어서는 안될 일이겠지만은, 특히 돌아가신 기일(忌日)을 당하여, 또는 추석이나 설날같은 명절을 맞이해서, 또는 서리와 이슬이 내리는 소슬(蕭瑟)한 가을에 조상의 산소를 찾았을 때 우리는 조상을 추모하는 마음이 더욱 간절하여 제례를 올리는 것입니다.
추모의 정이 간절하면 정성 또한 지극해지는 것입니다. 제사는 정성에서 시작하여 정성으로 끝난다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예출어정(禮出於情)이란 말이 있습니다. 예는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 마음은 곧 추모의 정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제사를 앞두고 우리가 엄격한 재계(齋戒)를 통하여 마음과 행동에 근신을 다하는 것도 이 정성을 위하는 노력입니다.
옛사람들은 제사를 앞둔 열흘동안 앞의 7일간을 산제(散齊)라 하여 술을 마시지 않고, 고기를 먹지 않고, 음악을 듣지 않고, 여색(女色)을 가까이 하지 않으며, 타인의 길흉을 묻지 않는 등으로써 근신하는 동시에, 나머지 3일간을 치제(致齊)라하여 오로지 조상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일관하여 그 계시던 곳을 생각하고, 그 웃고 말씀하시던 것을 생각하고, 그 뜻하시던 것을 생각하고, 그 즐거워하시던 것을 생각하고, 그 즐기고 좋아하시던 것을 생각하는데 전념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마침내 제청(祭廳)에 섰을 때 조상의 모습이 애연한 가운데 나타나고, 숙연한 가운데 그 하시는 말씀이 들린다 했습니다. 이리하여 조상의 혼령과 나의 마음이 혼연히 교감하는 가운데 조상의 유훈과 유덕을 다시금 새롭게 감모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지성에 찬 우리의 마음은 자연 엄숙하고 경건한 태도로 나타나는 것이고, 이러한 태도는 자못 숭고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과공(過恭)은 비례(非禮)」라는 말이 있습니다. 마은은 없이 형식에만 치중하고 또 분수에 넘치게 제수(祭需)를 차리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못됩니다. 칭가유무(稱家有無)로 우리의 사정과 형편에 따라 정갈하고 조촐하게 제상을 차리되 정성을 다하여 예를 올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에는 반드시 질서가 따르는 것입니다.
질서가 있는 만큼 진설(陳設)이나 행사의 순서나 법식(法式)에 있어 우리가 따르고 지켜야 할 준례(準例)가 있는 것입니다. 조상 대대로 지켜온 이 준례 또한 대단히 중요한 것이어서 개인에 의해서 함부로 바꾸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만일 현실의 사정에 의해서 바꾸어야 할 점이 있다고 생각되면 문중에서 충분한 토의를 거쳐 종인들의 합의에 의해 고쳐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제례는 가가예(家家禮)에 따라 각 문중마다 다소의 차이가 있는 것으로서 우리 문중도 우리 문중 나름의 전통적인 제례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근자의 급속한 시대적 변천에 따라 많은 종인이 고향을 떠나 객지에서 핵가족중심의 생활을 하다보니 배운 바가 적어 자연 숭조정신이 해이해지고 전통제례도 또한 문란해진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복잡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생업에 바쁜 우리가 선조께서 지켜오신 전례를 그대로 다 따를 수는 없다 하더라도 가능한 한 정성과 격식을 갖추어 제사를 받들어야 되겠습니다. 개인의 주관에 따라 전통제례에 혹 비판의 소지가 있다 하더라도 자기 마음대로 함부로 제례를 변경할 것이 아니라 가급적 문중의 전통제례를 지키고 이를 통하여 우리 문중의 주체성과 동질성을 유지해 나가도록 힘써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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