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전종회소개 / 석전종회유래 / 칠곡인이 된 유래
석전종회유래 | 칠곡인이된 유래 | 석전에 居(거)한 유래 |
漆谷人 (칠곡인)이 된 由來(유래)
칠곡 귀바위(이암) 전경
廣李(광이)는 한때 八克朝廷(팔극조정)이라고 하였다.
그중 左通禮公(좌통례공) 諱 克堅(휘 극견)께서 星州牧使(성주목사)로 赴任(부임)하시어 第 二子(제 이자)이신 承仕郞公(승사랑공) 諱 摯(휘 지)을 本郡永川崔氏(본군영천최씨) 諱 河(휘 하)의 無男獨女(무남독녀)에 장가들어 崔氏(최씨)의 願(원)에 依(의)하여 通禮公(통례공)께서 이곳에 머물러 살기를 命(명) 하였다.
그후 四代(사대)만에 石潭先祖(석담선조) 諱 潤雨(휘 윤우)가 나시어 寒岡鄭先生(한강정선생) 諱 毬(휘 구) 門下(문하)에 從學(종학)하여 高弟(고제)가 되었고 벼슬은 翰林(한림)을 거쳐 工曺參議(공조참의)에 이르시고 贈職(증직)은 吏曺參判(이조참판)이시다.
일찍 史冊(사책)에 直書(직서)한 혐의를 입고 北方(북방)인 鏡城判官(경성판관)으로 就任(취임)하여 興學善政(흥학선정) 하였으므로 百姓(백성)이 感化(감화)되어 鐵碑(철비)를 세워 찬양하고 孺林(유림)은 興學碑(흥학비)를 세우고 鰲山書院(오산서원)을 創建(창건)하여 奉享(봉향)하였고 星州檜淵書院(성주회연서원) 漆谷泗陽書院(칠곡사양사원 - [鄭寒岡先生書院(정한강선생서원])에 獨配享(독배향)을 하였고 家廟(가묘)에 不遷位(불천위)로 奉祀(봉사)하고 있다.
上枝 (상지)
宗孫炳求(종손병구)는 承仕郞公(승사랑공)의 二十代孫(이십대손)이고 石潭先生(석담선생)의 十六代孫(십육대손)이라.